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8월 5일 오늘의 역사, 헐버트 타계

윤의사 2024. 8. 5. 19:51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18631949)은 한국 이름이 허할보(許轄甫)로 할 정도로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대한제국의 항일운동을 적극 지원한 외국인이다.

23세인 1886년 헐버트는 영어 교사가 필요하다는 조선의 요청에 의해 한반도 땅에 첫발을 내렸고 이후 1891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1893년 다시 조선으로 와서 최초의 관립학교인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헐버트는 한국을 사랑하면서 한글이 가장 우수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펴낸 책이 사민필지한국사

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의해 시해되던 날은 고종황제를 옆에서 지켰으며,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하자

고종황제의 특사로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가기도 했다.

그가 길러낸 제자 중에는 주시경과 같은 한글학자와 이승만과 같은 독립운동가 겸 초대 대통령도 있었다.

19193.1운동이 일어났을 때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일본의 잔인함을 고발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지원할 것을 호소했다.

1949년 대한민국이 독립되고 정부가 수립되자 42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했다가 일주일 만인 85일에 세상을 떠났다.

유언으로 미국의 웨스터민스터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라고 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한 사람으로 그의 유언에 의해 헐버트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다. 19503월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을 위해 헌신한 헐버트의 공을 인정해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해 외국인으로서는 최초의 건국공로훈장 수훈자가 되었다.

김동진선생이 저술한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에 의하면 19497월 미국 스프링필드유니언지에 실린 헐버트 박사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확신에 찬 주장을 엿볼 수 있으며, 독립을 자신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인은 가장 완벽한 문자인 한글을 발명했고, 임진왜란 때 거북선으로 일본군을 격파해 세계 해군사를 빛냈으며, (조선왕조실록같이) 철저한 기록 문화를 지니고 있다며 우수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한편 “3·1운동으로 보여준 한민족의 충성심(fealty)과 비폭력 만세 항쟁은 세계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국심의 본보기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한국인과 한국을 더 잘 평가하면서 긍지를 가진 외국인이라고 하겠다.

헐버트의 <사민필지>
양화진외국인묘원에 있는 헐버트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