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라면이 처음 출시

윤의사 2023. 9. 15. 11:29

지금이야 가벼운 한 끼 식사로 라면을 먹지만, 1963년 삼양라면이 처음 선을 보일 때만 해도 국내는 아직까지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이 많을 때였다. 사실 본인이 1988년 학교에 처음 근무를 할 때도 도시락을 못가지고 오는 학생이 있어 자친(慈親)께 도시락 준비를 부탁해 특별실로 공부하러 갈 때 학생의 책상에 가져다 준 적이 있다. 먹고 나서는 책상 밑에 놔두면 하교 후에 가져간다고 메모도 남겼다. 1988년도 어려웠던 시절이니, 1960년대는 더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삼양식품을 창업한 전중윤 회장이 남대문 시장을 가다가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을 사먹으려고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음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 회장은 일본을 갔을 때 먹었던 라면을 생각하며 라면이야말로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최고의 음식이라 생각했다.

전 회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김종필을 만나 자신의 뜻을 말하고 지원을 부탁하자 김종필은 당시 농림부를 통해 5만 달러를 빌릴 수 있었다. 그는 일본 묘조식품(명성식품)의 오쿠이 사장을 만났다. 오쿠이 사장은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이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 정상화도 안 됐지만 6.25 전쟁이 일본 경제를 다시 일으켜 준 셈이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6.25 전쟁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라면을 생산하는 라인 하나에 6만 달러였지만, 두 라인을 25천 달러에 그 자리에서 발주를 해주었다.

라면을 만드는 공정을 배우는데, 한 가지는 일본인 기술자들이 가르치길 거부했다. 바로 스프배합기술이었다.

포기하고 서울로 오는 날에 오쿠이 사장은 비서를 통해 공항에서 봉투를 주었다.

비행기 안에서 뜯어보라는 오쿠이 사장의 말대로 전 회장이 봉투를 뜯으니 스프배합비율을 적은 메모였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전 회장은 국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해주고자 1963915일 삼양 치킨라면을 생산했다.

전 회장은 라면을 팔아 손해라는 임직원의 만류에도 라면 가격을 10원에 팔았다.

당시 자장면 가격이 20,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 버스 운임은 8원(1965)이었으니 저렴한 가격이라 하겠다.

라면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날개를 달았다. 이후 라면 가격은 7년 후인 197020, 1978년에 50, 1981년에 100원으로 올랐고, 1990년에 200, 1995년에 300원으로 올랐다.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신라면이 소매가격으로 1,000원이다.

라면은 입맛에 따라 다양하게 개발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라면이 생산되고, 2000년대 들어 해외로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라면 전성기가 되었다.

삼양치킨라면(사진:삼양식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