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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자 경찰, 다모

윤의사 2022. 6. 9. 20:33

양반집 여성들은 남자 의원에게 치료받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에 태종은 창고궁사에서 일하는 여자 아이 수십 명을 뽑아 침놓는 법과 진맥법을 가르치고

제생원에서 일하게 하였다.

문제는 이들을 교육하는 사람들이 남자였기에 양반집 아녀자들은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중인이나 하층민 출신의 여성 중에 뽑아 침술과 진맥을 가르쳤다.

세종 때에는 서울에만 있던 여자 의사들을 지방에까지 확대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자 의사들은 많이 필요하여 임금들은 여자의사를 교육시키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연산왕 때에는 여자 의사들에게 의술뿐만 아니라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지배층들이 혼인을 하며 과다한 혼수로 사치를 일삼아 사회 문제가 되자 다른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지배층들이 혼인을 한다는 소식이 들어오면 혼수품을 조사하게 하였다.

오늘날 경찰관의 임무가 부여된 것이다.

이들이 본격적인 경찰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은 선조 때 일어난 정여립 사건때였다.

선조 19(1589)에 일어난 정여립 사건이 일어나자 강견이 최영경을 무고하였다.

최영경이 자신의 집 안방에 숨어있다는 첩보에 남자들이 함부로 여자가 머무는 곳에 갈 수 없기에

여자 경찰이 들어가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여자 경찰을 다모라고 하였다.

다모는 원래 청계천변에서 차를 파는 여인이었다.

오늘날 사복경찰이 임무를 수행하듯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모'로 불리웠다.

특히 여자들의 공간인 안방으로 남자 포졸들이 들어가기 어렵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모가 되기 위해서는 키가 152cm이상에 막걸리 세 사발을 단숨에 마실 수 있고, 쌀 닷 말은 번쩍 들어 멜 정도로 힘이 있어야 될 수가 있었다. 기운도 있으면서 남성적이어야 했던 것이다.

다모는 포도청과 형조, 의금부 등에 소속되어 반역 등 사건이 일어나면 안방으로 갑자기 들어갔다.

다모는 치마 속에다 2척쯤 되는 쇠도리깨와 포승줄을 준비하고 갔다.

확실하게 죄가 있다고 판단되면 높은 벼슬아치의 집도 도리깨로 들창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죄인을 묶어 의금부로 압송하였다.

요즈음에 경찰들이 다소 소극적(?)으로 범죄에 대응하는 것과 달리

다모들에게는 어느 절도 관용이 베풀어져 실수로 도리께로 사람을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되지 않고

귀양가는 정도의 벌을 받았다. 

조선시대 엄격한 성리학적 관념이 여자 의사나 여자 경찰을 탄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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