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임병찬 의병장 기병

윤의사 2022. 6. 4. 18:17

본관이 평택인 임병찬 장군의 자는 중옥(中玉), 호는 돈헌(遯軒)이다.

1851년 음력 2월 5일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광월마을에서 임용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한학에 통달했으며, 16세 때 전주 지방시에 급제하였다.

1888년 전라도 지방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삶이 어렵자,

11월에 1,000냥을 내어 구휼하고, 이어 3,000냥과 조(租) 70석을 내어 백성을 도우면서

다음 해 이를 받을 때 1석에 25전의 저리를 받아 백성을 구하였다.

이 공으로 1899년 호남의 선비들의 추천으로 같은 해 2월에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의 직첩을 받았으며,

같은 해 7월 낙안군수 겸 순천진관병마동첨절제사이 되었다.

1906년 2월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최익현과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같은 해 6월 순창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가 최익현과 함께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7월 9일 대마도에 감금되었다가 1907년 1월 귀국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의병을 일으키려고 때를 기다리던 중,

1912년 9월 고종의 비밀 명령에 따라 독립의군부 전라남도 순무대장이 되었다.

독립의군부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과 조선총독에게 합방의 부당성을 깨우쳐주면서

대규모 의병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1914년 5월 24일 일본경찰에 동지 김창식이 잡힌 뒤 독립의군부의 조직과 계획이 탄로나면서 체포되었다.

옥중에서 세번의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6월 13일 거문도로 유배되었다.

1916년 5월 이곳에서 병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군산에 위치한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