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평해길

한음 이덕형

윤의사 2020. 3. 25. 20:02

선조, 광해군 때의 정치가이다.

임진왜란 때 외교 능력을 발휘하였고, 전쟁 뒤에는 민심 수습과 군사 정비에 힘썼다.

 

이덕형은 스무 살에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섰다.

이율곡의 추천으로, 이항복과 더불어 휴가를 받고 독서에 힘쓰게 되어 더욱 실력을 쌓았다.

임진왜란 때는 병조 판서를 맡고 훈련도감의 책임자가 되어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는데,

특히 홀로 밀양에 적진에 들어가 왜장을 만나 배신에 대해 힐난하였다.

왜군의 겐소스님과 야나가와 등이 나와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함이니

길을 내달라고 하니 거절하고 물러나왔다.

이항복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군사적인 지원을 얻어 내었다.

평양탈환작전을 이끈 이여송을 도와주기 위해

이원익과 함께 긴밀하게 협조하여 조명연합군이 평양을 탈환하게 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항복과 이원익이 공신으로 추서되었으나,

이덕형은 끝내 사양하였다.

1602년에 영의정이 되어 4년간 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조선의 민심을 수습하는데 애썼다.

그 뒤 광해군이 임금이 되자, 이덕형은 명나라에 다녀와 영의정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남인계열로 이산해의 사위였지만,

항상 공평무사하게 처리하였으며, 이항복과 이원익의 협조로 원만하게 정치를 할 수 있었다.

광해군이 배다른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모시키려 하자 반대하다 벼슬에서 쫓겨났다.

이덕형은 이황의 학문을 잇는 남인 출신으로 <한음 문고> 등의 저서가 있고,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낸 이항복과 더불어 오성과 한음으로 불리며 숱한 일화를 남겼다.

임진왜란을 물리치는데 크게 공을 세운 3리가 있었으니,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이 그들이다.

 

 

 

 

명나라를 다녀오면서 쓴 사행기인 <죽천행록>

 

이덕형 묘와 묘비

 

이덕형의 묘가 있는 길은 평해길이다. 평해길은 간선대로의 하나로 서울에서 경기도 동부를 거쳐 강원도 강릉을 지나 동해안의 해안선을 따라 묵호, 삼척을 지나 울진 평해에 이르는 길이다.

 

 

'경기옛길 > 평해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수리 정약용 선생 생가와 팔당호  (0) 200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