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6월 16일(음) 오늘의 역사, 정약용 출생

윤의사 2022. 6. 16. 20:18

5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써서 정치, 경제, 사회 사상을 집대성한 최고의 실학 사상가이다.

정약용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학문을 통해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앞장섰으나,

시대를 잘못 만나 개혁의 뜻을 다 펼치지는 못하였다.

자는 귀농 도는 미용이며, 호는 다산, 탁옹, 태수 등이고, 시호는 문도이다.

 

정약용은 어릴 때 <삼미집>이라는 책을 낼 만큼 글재주가 뛰어났다.

그리고 열여섯 살 때 이가환, 이승훈을 통해 이익의 실학을 배우고,

젊은 시절 이벽의 영향으로 서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벼슬에 나선 뒤에는 붕당 정치의 단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탐관오리들에게 시달리는 농민을 구하기 위해 토지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모신 수원에 성을 쌓아 신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정약용에게 이 공사를 맡겼다. 정약용은 공사를 2년 만에 훌륭하게 끝냈다.

이때 정약용은 서양의 과학 지식을 받아들여 성을 설계하고, 무거운 돌을 운반하는 데 쓰는

거중기, 도르래, 바퀴 달린 수레 같은 기계도 만들었다. 덕분에 공사비를 크게 절약하였고, 정조의 신임도 한층 커졌다.

 

정약용은 암행어사가 되어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했다.

그리고 나라의 관리라면 백성을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곡산 부사가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실천하고,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찾아 몸소 실천했다. 그리하여 백성들에게 이모작을 가르치고,

과일 나무를 재배하도록 권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사회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개혁의 방향을 알려 나갔다.

 

정조가 갑작스레 죽고, 정약용은 서학과 천주교를 했다는 이유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정약용은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써서 실학의 성과를 총 정리했다.

관리들의 올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정리한 <목민심서>, 중앙 정치의 잘못된 점을 고치자고 한 <경세유표>,

억울한 백성들이 없도록 형벌을 공평하게 하자고 한 <흠흠신서>, 천연두에 대해 적은 <마과회통>,

만주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적은 <아방강역고> 같은 책들이 모두 이 무렵 완성되었다.

다산초당
다산초당 현판
목민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