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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소고리 마애삼존석불

윤의사 2026. 5. 20. 10:52

이천(利川)은 고려시대 이전에는 남천, 남매, 황무 등으로 불리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후백제군과 싸우기 위하여 복하천에 왔으나 비가 많이 와서 하천을 건널 수 없었다.

이때 서목이 왕건을 이끌어서 하천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서목의 도움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한 왕건은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글귀에서 첫 글자와 끝 글자를 따와 ‘이천’이라는

명칭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주역>에 나오는  ‘이섭대천(利涉大川)’은 '큰 내를 건너 이로웠다'는 것이며, '학문과 덕을 쌓고 몸을 기르면 험난한 과정이라

할 수 있는 큰 내를 건너 큰 공을 세울 수 있으며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는 뜻이다.

이천에는 이전에 소개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과 소고리 마애여래좌상 등을 비롯해 고려시대의 석불과 마애불이 많이 남아 있다. 영원사 석조약사여래좌상, 고려 말 나옹선사가 부모님을 천도하기 위해 조성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동산리 마애여래상 등 많은

석불과 마애불이 있다. 

 

마옥산 부처바위라 불리는 마애여래좌상에서 약 7m 아래 지점의 화강암 자연 바위에 조각되어 있다.

이 삼존불은 남서쪽을 향해 있으며, 편편한 자연석 면에 새김으로 조각되었으며, 모두 결가부좌한 좌상의 형태이다.

이 석불은 신라시대의 토우처럼 과장되었지만 친근감있게 표현하였다.(설명문에서 '미개종족의 신상에서 볼 수 있는 희화적'이라는 표현은 수정해야할 것 같다.)
중앙의 본존은 머리 위에 천개(天蓋)처럼 바위가 굴곡지게 앞으로 나와있으며, 머리에는 관모형의 소발이 있다. 얼굴은 긴 편으로 귀, 눈, 코, 입은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그렸다. 목에는 번뇌·업(業)·고통을 상징하는 3道가 있으며 가슴에 대칭형 사선을 그어 법의의 옷깃을 나타냈다. 양손 손가락을 벌려 손바닥을 가슴에 대었고, 하단에는 결가부좌한 오른쪽 발바닥면이 보이고있다.
좌협시보살은 머리는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높이 솟아있고, 맨머리인 듯하며 양손은 가슴에 마주 모으고 있다. 가늘게 뜬 눈과 코, 입과 불균형스럽게 큰 귀가 있다.

우협시보살은 높직한 관모와 3도가 있으며, 양손을 가슴 앞에서 합장하고, 무릎 가운데 오른쪽 발바닥이 표시되어 있다. 높이는 좌협시 보살이 69㎝, 우협시보살이 93㎝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불상처럼 균형이 맞지않고 꾸밈이 없는 자연스런 모습이 옆집 아저씨나 아줌마처럼 관람객을 만나주면서 장난을 걸어줄 것 같은 친근감을 주고 있다. 조성년대는 대략 고려중기 이후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