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5월6일 오늘의 역사, 위당 정인보 선생이 태어나다

윤의사 2026. 5. 6. 10:07

선생은 189356일 서울 종현(현 명동성당 부근)에서 호조참판을 지낸 아버지 정은조와 어머니 달성 서씨의 독자로 태어나 후손이 없는 큰집의 양자가 되었다. 본명은 인보이며 어렸을 때 이름은 경업이다. 자는 경시이고 호는 위당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쓰고 재주가 뛰어나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191017세 때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난곡 이건방으로부터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개조된 양명학을 배우며 큰 영향을 받았다.

일제가 왜곡한 역사 대신 우리의 역사 속에 흐르는 을 강조하는 얼 사상을 주장한 정인보 선생은 젊은 시절 중국 땅에서 비밀결사인 동제사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했으며,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귀국해서는 붓과 펜으로 일제와 싸웠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역사 연구에 몰두하며 일언(一言일사(一事일행(一行일동(一動) 깡그리 골자(骨子)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학 보급과 민족문화 앙양에 노력했다.

1950731일 서울에서 공산군에 의하여 납북되었다. 북한 정권에 의해 반동으로 분류되어 국군이 북진하자 적유량산맥에서 1023일에서 25일 사이 방치되었다가 그 후 병원으로 후송되어 결국 그해 11월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생의 납북과 죽음에는 당시 북한 부수상이었던 홍명희의 차남으로 간첩으로 남파되었던 둘째사위인 홍기무 상당히 관련되었다는 것이 넷째 아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증언이다. (이하 출처:위키백과)

 

홍명희는 월북할 때 둘째 아들 홍기무를 데리고 갔는데 그는 위당 정인보 선생의 둘째 사위였습니다. 다음 위당 선생의 자제분인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증언,

 

아버님과 벽초 선생이 절친해 벽초의 둘째 아들 홍기무와 둘째 누이의 혼사가 이루어졌다. 벽초가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가며 둘째 아들을 데리고 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둘째 매형(홍기무)이 남파간첩으로 내려왔다 붙잡혔다. 당시 아버님은 감찰위원장이었다. 6·25가 나자 형무소를 탈출, 서울이 점령당하자 큰 차를 타고 우리 집에 왔다. 장인에게 큰절을 하더니 장인께서도 저와 같이 혁명 사업을 하시지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너는 유물론자고 나는 유심론자인데 어떻게 같이 혁명 사업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다시 큰절을 하더니 장인이 절개를 지키는 건 존경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민 정부에 협력 안하시면 반동입니다라고 하고 갔다. 그 며칠 후 보안서원 몇 명이 와서 아버지를 데리고 갔다.”

 

6.25 당시 사돈 홍명희는 북한 부수상이자, 전쟁의 최고 지도부였던 7인 군사위원회의 위원이면서 맏딸 홍영숙이 김일성과 재혼(?) 혹은 내연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홍명희는 김일성의 장인이고, 사위 홍기무는 김일성의 처남이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가 될 것이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