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때 시인으로 젊은 인생을 외롭게 살다 간 그녀의 시는 매우 아름다워 널리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허난설헌이 활동할 당시 조선 사회는 여성이 글을 읽고 시를 쓰는 행위를 ‘덕성을 그르치는 행위’로 보았다.
그렇지만 아버지 허엽의 개방적인 교육철학, 즉 양성평등을 몸소 실천한 결과로 허난설헌은 오빠 허성∙허봉,
남동생 허균과 함께 천자문부터 시작해 시를 익혔다.
허난설헌은 오빠 허봉에 의해 문학적 기반을 다졌다. 허봉(둘째 오빠)은 12살 어린 누이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당대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인 손곡 이달을 스승으로 삼게해 문학을 공부하게 했다.
1577년 김성립과 결혼해 시어머니의 호된 시집살이와 남편 김성립의 허난설헌에 대한 열등감으로 정을 주지
않아 뼈저리게 외로움을 느끼며 오직 시를 짓는 일에 몰두했다. 2년 사이에 연이어 딸과 아들이 죽자, 시로
슬픔을 달랬다
1589년 5월 3일(음)3월 19일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허난설헌은 죽으며 ‘조선에 태어난
것과 여자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 김성립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허난설헌의 동생 허균은 누이의 글을 모아 <난설헌집>을 만들었는데, 이 책을 보게 된 중국 사신 주지번이 천하
제일의 글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난설헌이 자식을 잃은 슬픔을 ‘곡자(哭子)’라는 시에 담아냈다.
曲子(곡자)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浪吟黃臺詞(랑음황대사)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이여 (광주 땅 안동 김씨 선산)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구나.
부질없이 황대사(黃臺詞) 읊조리면서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1589년 봄, 27세가 되던 해, 허초희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시를 남겼다.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
碧海浸瑤海(벽해침요해)
靑鸞倚彩鸞(청난의채난)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紅墮月霜寒(홍타월상한)
창해는 요해로 스며들고
청란은 채란과 어울리는데
부용꽃 스물 일곱 떨기 늘어져
달밤 찬 서리에 붉게 지네
‘삼구(三九)’는 27을 의미한다. 부용꽃(芙蓉花)이 서리(霜)를 맞아 붉게 떨어지는 것은, 만개하지 못한 채 요절(夭折)함을 뜻한다.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 바로 그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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