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5월4일 오늘의 역사, 육탄 10용사가 송악산기지를 되찾다

윤의사 2026. 5. 4. 19:33

개성은 6.25전쟁 이전에 대한민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선친께서는 이곳 개성에 살고 계셨다.

선친께서는 생전에 개성의 북쪽에 송악산이 있어 '송악산이 개성을 따듯하게 품고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송악산은 개성에서 멀리 임진강을 건너 파주까지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군사상 요지였다.

김일성은 송악산만 차지한다면 38도선 이남의 적화는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

1919년 5월 3일, 북한군 보안대(현 국경경비대)가 송악산의 주요 기지인 유엔고지, 비둘기 고지,

155고지와 290고지를 기습 점령한 뒤 방어용 진지로 아군이 전에 구축해놓은 두께 1.5~2.5m의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영구진지인 토치카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북괴군을 배치했다.

대한민국 제1사단 11연대는 즉각 반격했으나, 북괴군의 토치카에서 뿜어대는 기관총으로 사상자만

늘어나고 탈환에 실패했다.

고지를 탈환하기 어렵다고 자포자기할 때, 제11연대 1대대 소속이었던 서부덕 이등상사(현재의 상사,

후에 소위로 추서)와 박창근 하사ㆍ 윤승원 하사ㆍ 김종해 일병  이희복 일병ㆍ박평서 일병ㆍ황금재 일병ㆍ

양용순 일병ㆍ윤옥춘 일병ㆍ오제룡 일병 등10명의 대원이 자원했다.

10명의 용사들은 81mm 박격포탄에 수류탄을 장치한 급조 폭발물을 가슴에 안고 적진으로 돌격했다. 

10명의 용사가 차례로 적의 진지로 뛰어들며 폭탄이 터지면서 북한군의 방어진지는 무너졌다.

북한군의 방어진지가 무너지자 아군은 돌격해 적 사살 137명, 기관총 등 114정의 무기를 노획하고 4개 고지를

모두 탈환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가 '송악산 전투'이다.

'10용사의 노래'를 불러보며 10용사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1절>

비둘기 고지에는 초목도 운다/적탄이 비 오던 날 아군의 용전/들었나 포연 속에 적군의 얼굴

서상사는 원합니다 특별공격을/부대장을 울려주던 애원의 소리/장하다 우리용사 아~ 십용사

<2절>

유엔 고지에는 적구도 운다/토치카 파괴하던 십삼시 이십분/붉고 검은 얼굴위에 방긋 웃었소

내 한 젊은 장한다짐 최후의 부탁/지축을 흔드는 폭발의 소리/장하다 우리용사 아~ 십용사

(사진:파주시청)

파주시 통일공원 내에 있는 10용사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