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성(白龍城) 조사는 1864년 5월 8일 전라북도 남원군 하번암면 죽림리(현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서 아버지 백남현과 어머니 밀양 손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7세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9세에는 한시를 지을 정도였다고 한다. 14세 때 출가하려 하였으나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 1879년 16세에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 극락암으로 출가했다. 이후 40세까지 전국의 절을 찾아다니며 수행과 정진을 하였다.
1907년 9월 중국으로 약 2년 동안의 여행하면서 국제 정세와 시대의 변천을 직접 보고 나서 대각교(大覺敎)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용성조사는 48세에 서울 종로 봉익동에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하고 대각교운동을 펼쳤다. 대각교운동이란 '내가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자(自覺覺他)'는 정신으로 개항 이후 일본 불교의 침투로 왜색화되고, 천시받던 불교를 개혁·정화하여 사회변화에 발맞추어 대중과 함께하는 대중불교를 지향하고자 한 것이다.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과 태화관에서 자리를 함께하여 독립선언서를 작성, 서명하였다. 후에 법정에서 일본인 판사에게 "조선이 독립하는 것이 마음으로 좋아서 찬성하였다"라고 말하며 독립 의지를 굽히지 않았으며,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만주 연길 명월진과 봉영촌에 대각사 선농당을 세우고 700ha의 농장을 마련,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간도로 이주한 동포들에게 생활 터전을 마련해주며 민족의식을 일깨워주었다. 경남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백운산에 임야 30여ha와 많은 논밭을 가꾸고 화과원을 만들어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고 전국 불교계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했다. 조사는 이돈을 불경 등으로 위장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만주에 있는 독립운동가에게 전달해 항일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일제의 왜색화 불교작업에 맞서 불경의 한글화 작업을 통해 산중불교를 대중불교와 호국불교로 성격을 바꾸며 한국 불교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였다.
일생을 독립운동과 불교의 왜색화를 막고 한국 불교를 지키려고 노력한 조사는 1940년 2월 24일 목욕재계한 뒤, 제자들을 불러 놓고 "그동안 수고했다. 나는 간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77세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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