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5월9일 오늘의 역사, 이색이 태어나다

윤의사 2026. 5. 9. 10:52

이색은 1328년 (음)5월9일(양력 6월25일)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무가정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그리고 원나라에 건너가서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려로 돌아온 뒤, 공민왕에게 토지 제도의 개혁, 국방 계획, 교육의 진흥, 불교의 억제 등

여러 가지 개혁을 제안하였다.

또한 홍건적이 침입해 오자 공민왕을 모시고 상주로 안전하게 피난하여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 뒤 이색은

중국에서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되는 때에, 쇠퇴하는 원나라보다는 명나라와 가가워져야 우리나라에 많은

이익이 있다며 더욱 강력한 친명 정책을 주장하였다.

 

불교 개혁을 주장하다

이색은 불교의 우수성을 성리학과 결합시키면 고려가 더욱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불교계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면서 고치는데 앞장섰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많은 승려의 수를 줄이고, 당시 사찰이 누리고

있던 여러 가지 특혜를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색의 불교 개혁 주장은 고려 사회가 점차 성리학

중심의 사회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성리학을 널리 퍼뜨리다

공민왕 때 국립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이 세워졌다. 이색은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만들고 김구용, 정몽주,

이숭인 같은 학자들을 교수로 뽑아 성리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을 세웠다. 또한 과거 시험의 감독관을 여러 차례

맡아 권근, 맹사성 같은 유명한 관리와 학자 100여 명을 길러 내 교육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리하여

훗날 조선에서 성리학이 정치의 근본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웠다.

 

고려를 끝까지 지키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자, 이색은 조민수와 손을 잡고 이성계 일파를 견제하였다.

그러나 이성계 일파에게 밀려 귀양을 갔다.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이색에게 벼슬을 주면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색은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벼슬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1396년 (음)5월7일(양력 6월 20일) 여강으로 다시 귀양을

가던 도중에 세상을 떠났다.(사진:서천 문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