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2월 14일 오늘의 역사, 재일동포 제1차 북송

윤의사 2025. 12. 14. 14:46

1959 12 14, 소련 선박 클리리온호와 토보르스크호에 재일동포 234세대 975명이 승선해 일본의 니가타(新潟)항을 떠나 북한 청진항으로 향했다. 북한으로 가는 배에서 재일동포들은 그동안 일본에서 생활하며 받은 차별대우에서 벗어나 '지상낙원'으로 간다는 기대로 들떠 있었다.

사실 재일동포 북송사업은 일본 정부가 골칫거리로 생각한 재일동포의 국외 추방과 북한의 노동력 확보와 대남간첩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이 맞아떨어져 이루어진 일이다.

재일동포들이 일본으로 가게된 것은 일제 침략기에 생계를 목적으로 또는 태평양 전쟁이후 일본에 강제 징용되거나 징병된 사람들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해 귀국을 머뭇거리다, 6.25전쟁으로 귀국을 아예 포기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의 생활은 일본 사회의 소수자로 교육과 취업에서 엄청난 차별을 받으며 타향살이를 실감하고 있었다.

1959년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의 경제력보다 북한의 경제력은 월등하였다. 조총련에서는  '대한민국에는 거지가 득실대지만, 북한은 의식주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지상낙원'으로 재일동포를 유혹했다.

1959 8 13 일본과 북한적십자사는 인도 캘커타에서 '재일동포 북송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반대했지만 메아리만 들려왔다. 1959년 12월 14일부터 1984년까지 25년간 186차례에 걸쳐 9 3,340명의 재일동포(일본인 6,703명과 중국인 7명 포함)가 북송되었다.

그러나 북송교포들의 기대와 달리 북한은 재일동포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동요계층 또는 적대계층으로 분류해 결혼, 전직, 거주지 등에서 감시와 차별을 하였다. 북송선을 탄 재일동포들은 한결같이 "도착하는 순간 우리가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지만 선택을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이들은 단지 일본에 남아있는 재일동포들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또는 재일동포들로부터 외화를 기부받기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북송을 가장 앞장서서 설득하던 조총련의 한 간부는 북한에 도착해 실상을 보고는 바로 속았음을 깨달았으며, 자신의 협박과 회유로 북송선을 탄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가지며 자살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나라나 일본에는 북송된 가족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생존해있는 북송교포와 자제들이 하루속히 귀국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하며, 대한민국 정부도 이를 돕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1차 북송선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