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2월 12일 오늘의 역사, 고종이 순한글 <독립서고문> 발표

윤의사 2025. 12. 12. 15:01

고종이 한 일 중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은 한글을 국가 공식문서에 사용했다는 점이다.

사실 세종대왕이 한글을 1446년 공포했지만, 우리나라 국가 공식문서에는 한자(한문)으로 되어 있었다.

고종 31년(1894) 12월17일(음력 11월21일), 한글을 국가 공식 문자로 지정하는 칙령을 내각에 지시했다.

한글은 고종의 칙령으로 국가 문서에 공식 문자로 쓰일 수 있었다.

고종의 칙령 발표 20일 후인 (음력) 1894년 12월 12일, '홍범 14조'와 '독립서고문'을 한글·한문·국한 혼용문 순으로

작성해 종묘에 고한 뒤에 제정·선포했다.

고종은 '독립서고문'에서  "이제 조선은 자주독립국이며, 황제국으로 거듭난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고종의 선포는 평가절하되었다.

왜냐하면 고종의 자주독립국 선언은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의 결과 승리한 일본이 '청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강요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강요에 의한 개혁정책이었지만 한글을 국가 공식 문서에 사용하게 한 것만은 고종의 자주부강의 생각이 담겨있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후 정부에서 발간하는 관보를 국한문 혼용으로 만들었으며, 1895년 유길준이 지은 <서유견문>도 국한문 혼용으로 쓰여졌다. 이어서 발행된 독립신문은 순한글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독립서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군주(大君主)가 종묘를 참배할 때의 서고문(誓告文)
개국 503년 12월 12일, 감히 황조(皇祖)와 열성조(列聖祖)의 신령 앞에 고합니다. 저 소자가 10살 어린 나이에 우리 조종(祖宗)의 큰 왕업을 이어 지켜 온 지 오늘까지 31년이 되는 동안 오직 하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면서 또한 우리 조종을 때로는 본받고 때로는 의지하여 여러 번 어려운 형편을 겪으면서도 남기신 위업을 그르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찌 저 소자가 하늘의 마음을 잘 받든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겠습니까. 실로 우리 조종께서 돌보아 주고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황조께서 우리 왕조를 세워 후손들에게 물려준 지도 503년이 되는데, 저의 대에 와서 시운(時運)이 크게 변하여 인문(人文)이 열리고 우방(友邦)이 진심으로 도와주고 조정의 의견이 일치되었으니, 오직 자주독립만이 우리나라를 튼튼히 할 수 있습니다. 저 소자가 어찌 감히 천시(天時)를 받들어 우리 조종이 남기신 업(業)을 보전하지 않을 것이며, 어찌 감히 분발하고 가다듬어 선대의 업적을 더욱 빛내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다른 나라를 의지하지 않으며 융성하도록 나라의 발걸음을 넓히고 백성의 복지를 이루어 자주 독립의 토대를 공고하게 할 것입니다. 그 방도를 생각건대 혹시라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안일한 버릇에 빠지지 않아서 우리 조종의 큰 계책을 공손하게 따르고 세계의 정세를 살펴 내정(內政)을 개혁하여 오랜 폐단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이에 저 소자는 14개 조목의 홍범(洪範)을 하늘에 계신 우리 조종의 신령 앞에 서고(誓告)하노니, 우러러 조종이 남긴 업적을 잘 이어서 감히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밝은 신령께서는 굽어 살피소서.

 

서고문과 함께 홍범14조도 함께 제시하며 개혁정책의 기본방향을 밝혔다.

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