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기사가 있다. 후사가 없이 죽은 철종의 뒤를 이어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인 재황이 고종으로 즉위하였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하에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왕족들은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흥선군은 '상갓집 개'라고 불리며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조롱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흥선군은 신정왕후를 자주 찾아 친분을 쌓고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을 익종의 양자로 삼는다는 조건으로 왕위 계승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신정왕후는 흥선군의 둘째 아들 재황(載晃)을 익종의 양자로 삼아 익성군(益成君)의 군호를 내리고 왕으로 즉위시켰다. 고종이 11세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신정왕후가 대왕대비이자 고종의 법적 어머니로서 수렴청정을 하였고, 고종의 친부인 흥선군이 대원군이 되어 집권하였는데, 조선 역사상 국왕의 생부가 생존하여 통치한 것은 처음이었다.
조선시대 제26대 왕으로 쇄국 정책으로 닫혀 있던 나라의 문호를 개방하고 근대화 정책을 펴나갔다.
그러나 강력한 왕권을 세우지 못하고 외세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나라의 자주권이 흔들렸고,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비운을 맞았다.
어릴 때의 이름은 명복이며, 자는 성임 또는 명부이고, 호는 성헌이다.(1852-1919)
고종은 철종이 아들이 없이 세상을 떠나자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었다.
고종은 자라 어른이 되면서 흥선 대원군과 정치적으로 대립하였고,
최익현이 흥선 대원군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 것을 계기로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고종은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굳게 닫혔던 문호를 개방하여 서구 문화를 수입하였다.

강화도 조약 원문
그리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어 부산, 원산, 인천을 개항한 데 이어,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과도 차례로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어 정치 및 군사 제도를 바꾸는 한편, 일본에는 신사유람단과 수신사를 보내고,
청나라에는 영선사를 보내어 발달된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고종은 백성들의 근대화에 대한 열망을 받아들여 갑오개혁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에 대한 침략의 야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았고, 고종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였다.
그러자 일본은 고종의 부인인 명성황후를 살해하였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너무 오래 머물자 독립협회를 비롯한 백성의 대부분은 고종이 궁궐로 돌아와
조선을 자주 국가로 선포하기를 바랐다.
백성들의 열망이 커지자, 고종은 러시아와 일본의 협상에 따라 1년 만에 덕수궁으로 돌아왔다.
이어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자주 국가임을 드러내기 위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그리고 전화, 전철, 전신 사업 같은 서구의 과학 기술을 도입해 본격적으로 근대화 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왕권의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고종의 여러 개혁 정책은 일본의 침략 정책에 막혀 좌절되고 말았다.
일본은 무력을 앞세워 을사늑약을 강제로 맺고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고종은 미국의 힘을 빌리려 했지만, 이미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미국은 일본을 편들었다.
그래서 일본 침략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밀사 파견은 실패로 끝나고, 오히려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로써 1863년 즉위해 1907년까지 44년간 재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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