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고, 개혁을 통해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 하였다.
공민왕의 이름은 전, 호는 이재 또는 익당, 몽고식으로 갖게된 이름은 빠이앤티무르이다.
공민왕은 충숙왕의 둘째 아들로 1330년 5월31일(음: 5월6일) 태어나 어릴 때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그곳에서 원나라 위왕의 딸인 노국대장 공주와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충정왕이 물러나자 왕이 되었다.
공민왕은 명나라의 등장으로 원나라의 힘이 약해진 틈을 이용해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고, 나라의 정치도 바로잡고자 하였다.
원나라를 몰아내고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다
공민왕은 우선 변발, 호복 등 고려에 널리 퍼져 있던 몽골의 관습을 없애고, 더 이상 원나라의 연호를 쓰지 않고, 관제도
문종 때의 것으로 되돌렸다. 또한 원나라가 고려를 간섭하기 위해 만든 기관인 정동행성을 없애고, 원나라 황실과 사돈을
맺은 것을 빌미로 날뛰던 기철 일파도 내쫓았다.
또한 공민왕은 원나라에게 빼앗겼던 함경도 부근을 되찾은 데 이어,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 요동에 남아 있던 원나라 세력을
공격하였다. 나아가 이성계에게 동녕부를 치게 하고 오로산성을 빼앗아 나라의 기세를 드높였다. 이렇게 평안도 북동부와
함경도 동부를 차지하면서 고려는 나라가 세워진 이래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국가 제도를 개혁해 정치를 바로잡다
공민왕은 7차례에 걸쳐 관제 개혁을 할 정도로 국가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였다. 예컨대 무신들이 권력을 휘두르며
정치를 하는데 발판이 되어온 정방을 없애고, 대신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이 기관은 귀족이 힘으로 빼앗은 땅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농민이었다가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풀어 주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민왕은 횡포를 부리던
친원파와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친원파의 반대가 거세고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이 잦아지면서 공민왕은 뜻을 펼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힘을
실어 주던 왕비마저 갑자기 죽자, 공민왕은 의욕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점차 나라일을 승려 신돈에게 맡긴 채 돌보지 않았다.
그러다 신돈이 일으킨 반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졌고, 공민왕은 결국 최만생 등에게 1374년 11월 4일(음:9월22일)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사진: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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