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 29권, 인조 12년(1634) 5월 26일
이조가 아뢰기를,
"전최(殿最)의 법은 무능한 자를 내치고 유능한 자를 승진시키기 위한 것으로, 예로부터 왕자(王者)의 정치에 있어서 이것을 중하게 여기지 않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수령의 전최는 관계됨이 더욱 중하여, 구차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방백(方伯)이 전최를 계문할 때 상·중·하로 등급을 매긴 아래에다 각각 선악과 능부(能否)를 써서 출척한 사유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은 몹시 아름다운 뜻입니다. 그런데 외방에서는 혹 시행하는 경우도 있고 시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일이 몹시 타당하지 않습니다. 팔도로 하여금 일체로 준행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지방관의 근무 실적을 평가해 승진 등에 반영하는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실시하는 내용이다.
한때 우리나라 교육 공무원들이 근무 성적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도서, 벽지로 가겠다고 치열한 경쟁을 한 적이 있다.
이러한 근무 성적에 따른 공무원 승진 규정은 고려시대부터 적용이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에 연말이 되면 관리들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이를 포폄이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포폄에 의한 인사 행정 제도를 확립한 것은 고려 제6대 성종 8년(989)에 6품 이하의 관리에 적용할 때이다. 이후 현종 9년(1018)부터 연말에 연종 도력법이 시행되었고, 예종 즉위년(1105)에 지방관 평가 제도인 수령 전최법(守令殿最法)이 마련되었다. 공민왕 때에는 근무 일수를 기준으로 한 도숙법(到宿法)이 수립되었고, 공양왕 때에는 근무 월수를 기준으로 삼는 개월법(個月法)이 신설되었다.
포폄은 특히 지방관의 심사를 가장 중요시했는데 ① 전야(田野)의 개간 ② 호구(戶口)의 증가 ③ 부역의 균등 ④ 사송(詞訟)의 간결 ⑤ 도적의 근절 등 다섯 가지 면으로 성적을 판정하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조 원년(1392)에 이미 지방관의 성적 평가의 원칙을 정했는데 크게 4등급으로 나누었다.
① 최(最) - 농지의 개간, 호구의 증가, 부역의 균등, 학교의 흥성, 사송의 간결. ② 선(善) - 공정하고 청렴하며 부지런하고 겸손함. ③ 악(惡) - 게으르고 난폭하며 욕심이 많음. ④ 전(殿) - 농지의 황폐, 호구의 손실, 부역의 번잡, 학교의 폐지, 사송의 번잡.
이러한 기준은 그 뒤 다소 변화가 있지만 관찰사가 매년 6월 15일과 12월 15일에 지방관의 실적을 왕에게 보고하면, 10회 포폄시사에서 모두 ‘최’면 1계급 승진이요, 2번 ‘악’에 해당하면 좌천이고, 3번이면 파직시켰다.
중앙의 관리도 세종 이후에 소속 관아의 책임자나 당상관이 등급을 매겨 왕에게 올려 지방관과 같은 상벌을 내렸다. 감찰 기관이었던 사헌부나 사간원의 관리들은 이와 같은 포폄에서 예외 대상이었다.
이러한 공무원 인사 점수 제도는 국가 행정을 원활히 해 나가면서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안이한 근무 태도를 바로잡을 수도 있었지만 자칫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한 정실(情實) 인사가 행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하였다.(사진:경산시 삼성현역사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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