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이 일어나자, 한국 정부는 이 사실을 주한 미대사관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에 통보하면서 유엔과 미국이 북한의 침략 행위를 즉각 중지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유엔은 6월 25일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미국이 제출한 '북한군의 침략 중지 및 38도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유엔의 결의에도 북한군의 침략행위가 계속되자 '6.27결의안'을 미국 주도로 채택하였다. 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침략에 한국을 지원한다'는 결의안이었다.
이어 자유진영 32개국이 결의안을 지지했으며, 미국의 육군, 해군, 공군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그후 한국을 돕기위해 16개국이 전투병을 파병하고 5개국이 의료 또는 시설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950년 6월 30일 연대장은 대대장 스미스 중령에게 이타즈케공군기지로 갈 것을 명령하였다. 곧 한국전에 참전하라는 명령이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미8군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와 제52포병대대를 중심으로 조직된 부대로 대대장인 스미스 중령의 이름을 따서 '스미스 부대'라고 불리웠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4대의 C-54 더글라스 수송기를 이용해 부산에 도착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후 8시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스미스 중령은 '가능한 한 북방에서 북괴군의 공격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고 두 차례에 걸쳐 오산 죽미령 일대를 정찰한 후 부대원을 이끌고 오산 죽미령으로 향했다.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 진지를 구축하면서 '미국의 참전으로 북괴군은 물러날 것'이라는 자신감이 컸지만, 적은 군대에 박격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이에 비하여 북괴군은 33대의 T-34전차를 앞세우고 10km에 이르는 군과 트럭으로 이루어진 북괴군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미스 부대의 공격으로 6대의 북한 전차를 파괴했지만, 북괴군이 스미스 부대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전차가 진지 중앙을 돌파하면서 방어선이 무너졌다. 이에 탄약과 병력의 부족으로 오후 2시 30분 후퇴를 결정하였다.
6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로 스미스 부대는 170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자가 발생했으며, 북괴군은 6대의 탱크와 42명을 사살하였다.
후퇴했던 스미스 중령은 북진 대열에 참가하여 11월 1일 신의주 남쪽 30km까지 진군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다가 11월 10일 전출 명령에 따라 한국을 떠났다.
스미스 중령은 준장으로 예편한 후 1975년 7월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으며, 2004년 5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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