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5월20일 오늘의 역사, 최초 여성 신춘문예 당선작가 백신애

윤의사 2026. 5. 20. 16:12

"울지 말아요. 사람의 삶이란 괴로운 것이에요. 괴로움이 곧 삶이란 말이지요."

여류 작가 백신애 (1908~1939)의  유작 단편 < 아름다운 노을>에 나오는 말이다.

당시로서는 <아름다운 노을>(1939) 내용은 파격적이다.

아들 하나를 둔 서른두 살 과부 순희는 화가로 자신에게 결혼하자고 한 사람의 동생인 열여덟 살 정규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다.

순희는 정규를 만나는 순간 “전생을 통하여 그리고 싶었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순희는 정규와 사랑과 함께 성욕을 느끼며 리드한다.

 

이처럼 파격적 소설을 쓴 백신애는 1908년 5월 20일 경북 영천에서 곡물 거상인 아버지 백내유와 어머니 이내동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독선생에게 교육을 시키던 아버지는 정규 학교는 보내지 않았다. 이에 백신애의 설득으로 영천보통학교와 경북공립사범학교를 나와 1924년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평탄한 삶을 보내는 듯 했다.

그녀를 변화시킨 것은 오빠 백기호가 독립자금을 대준 혐의로 구속되면서였다. 백신애에게 근대 문화와 여성의 권리를 알려준 오빠의 구속 등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사회주의 계열 ‘여자청년동맹’과 ‘조선여성동우회’에 가입해 ‘어머니가 꼭 지켜야 할 일’을 강의하며 여성계몽에 앞장섰으며, 주세죽과 함께 여성동우회 집행위원에 뽑히기도 했다.

1927년 가을까지 여성운동에 바빴던 백신애는 시베리아로 떠났다. 웅기에서 화물선 화장실에 숨어 5시간을 버티다 선원에게 발각되었으나, 선원의 배려로 짐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갈 수 있었다. 도착 직후 갑판에서 몰래 뛰어내렸지만, 곧바로 러시아 헌병에 체포돼 한 달 여 감옥생활을 하다가 소만국경으로 추방됐다. 이때  조선인 농가 도움으로 ‘쿠세레야 김’이란 이름의 여권을 만들어 블라디보스톡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베리아에서 귀국하다 두만강 국경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본 경찰은 그녀를 소련 스파이로 비밀임무를 띠고 들어온 조직원이라 생각해 고문을 가했다. 그녀는 이때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됐다.

아버지의 경제력 덕분에 일본 경찰에게서 벗어난 그녀는 계몽운동 대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박계화란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를 응모해 단편소설 1등으로 당선돼 60원의 상금을 받았다. 신춘문예 사상 첫 여성 당선자였으며, 60원의 상금은 당시 중견 기자 한달치 월급이었다.

1930년 5월 일본의 니혼(日本)대학 예술과에서 문학과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가 많은 나이임에 유학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아버지가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려, 바에서의 여급생활·식모·세탁부로 알바를 해야만 했다. 결국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1932년 가을 귀국했다.

귀국 다음해 봄 아버지 회사의 직원으로 일하던 이근채와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5년만인 1937년 별거에 들어가고, 1939년 이혼을 했다. 이때가 그녀는 창작에 몰두하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1938년 하반기부터 췌장암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다가, 이듬해 5월말 경성제대 병원에서 입원 한달만인 6월 28일 오후 5시에 세상을 떠났다. 

시베리아에서 생활하며 겪은 조선인의 어려운 생활을 1934년 1월과 2월, 잡지 <신여성>에 ‘꺼래이’를 연재하였다. 조선인들을 '꺼래이'라 부르던 러시아 사람들에게 차별을 당하며 고난을 겪는 모습을 그렸다.

 

"순이 일행은 세찬 바람을 맞아 가물거리는 등불을 보호하듯 얼어붙은 몸둥이 속에서 가물거리는 한 끼의 '삶'을 단단히 안았습니다. 무인광야를 가듯 넘어지고 웅크리고, 절름거리며 걸어갔습니다."

 

또 다른 작품인 '몹시 가난하다'는 뜻의 <적빈(赤貧)>은 일제 침략기 우리 민족의 한맺힌 가난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매촌댁은 몹시 가난하지만, 가난을 탓하지도 않으며 따스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집 한 칸, 땅 한 뙈기 없는 매촌댁에게는 성인이지만 제 구실을 못하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별명이 돼지인 큰아들은 돼지같이 먹고 철이 들지 않았는데 술을 먹고 사고를 쳐 동네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의 아내는 만삭으로 출산을 앞두고 있다. 둘째는 착실한 듯 하지만 동네 거지들의 속임에 빠져 노름판에서 모아놓은 돈을 모두 잃고 역시 거지로 생활해야만 했다.

그래도 매촌댁은 출산을 앞둔 벙어리 며느리를 주려고 숨겨두었던 보리쌀을 큰 아들인 돼지에게 주면서 “이것으로 죽을 쑤어서 너는 조금씩만 먹고 에미만 많이 먹여라”고 당부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며 뒤가 마려웠지만 "반드시 내일 아침까지 굶고 자야 할 처지이므로 똥을 누어 버리면 당장에 앞으로 거꾸러지고 말 것’이라며 참고 어두운 길을 바삐 가는 모습에 극에 달한 가난한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날 잔반이 넘치고 다이어트를 하는 풍요로운 생활 속에서 <적빈(赤貧)>은 절제를 가르치는 것 같다.

1930년 일본 유학 때의 백신애(백신애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