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하 의사는 1905년 5월 11일 황해도 송화군 하리면 장천리에서 부친 조용우의 4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 의사는 조국과 민족 없는 서러움을 느끼며 자식을 낳은 부인을 보러가다가,
처자식을 만나면 독립운동을 하려는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워 곧바로 먼 길을 떠났다.
1926년 “항일을 위해서는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본으로 갔다.
일본 오사카에서 낮에는 공장직원과 상점원 등으로 일하고, 밤에는 오사카 상공전문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일본에서 기회를 찾지 못한 조 의사는 중국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대만을 거치기로 했다.
조 의사는 1927년 11월 대만에 도착, 타이중시에 부귀원 농장에서 일했다.
당시 대만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지배를 받아 갖은 수탈과 행패를 벌이기에 고국의 동포를 보는 듯 하였다.
조 의사는 보검도를 사서 매일 칼 던지기 연습을 하였고,
칼날에는 독약을 바르고 언제든지 일제 수괴들을 처단할 날만 기다렸다.
일제는 중국을 침략할 전진 기지로 대만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많은 일본 병력이 대만에 주둔하였고,
이들 대만 주둔 일군을 특별검열하기 위해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이며 군사참의관을 지낸
육군대장 구미노미야가 특별검열관으로 대만에 온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구미노미야가 1928년 5월 14일 일군의 검열을 마치고 타이페이로 가기 위해 타이중 역으로 가는 도중
타이중시 대정정 시립도서관 앞 커브길에서 속도를 늦출 때 인파 사이에 서 있던 조 의사는 차에 뛰어올라
구미노미야를 칼로 찔렀다. 구미노미야는 부상을 입었고, 칼에 독이 묻은 줄 모르고 있다가 8개월 만에 사망하였다.
조 의사는 현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대만 국민들에게
“여러분들은 놀라지 말라, 조국 대한을 위해 복수하는 것입니다”
라고 크게 외친 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피체되었다.
같은 해 7월 18일 대만고등법원 특별공판정에서
“황족에 위해를 가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라고 사형선고를 받고 3개월 뒤인 10월 10일 24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조 의사는 순국 직전에 유언을 묻는 임석관에게
“아무 할 말은 없다. 이 순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세상에 가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리라”
는 유언을 남기고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쳤다.
1963년 삼일절에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국민장(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44번)에 마련되었다.(사진 출처:조명사의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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