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2월29일 오늘의 역사, 세화를 금하다

윤의사 2025. 12. 29. 18:36

<연산군 일기>60권, 연산 11년(1505) (음)12월 29일

전교하기를,

"세화(歲畵)는 한갓 종이와 먹만 허비할 뿐이니 이제부터는 그만 두라."

하였다.

 

라는 기사가 있다.

'세화(歲畫')란 새해를 맞아 미리 화원에게 각기 질병이나 재난 등의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예방하고, 한 해 동안 건강과 복과 같은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는 그림이다. 즉 간사한 것을 피하고 물리치는 벽사(辟邪) 기능과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기복(祈福)의 성격을 띠는 그림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이 그림을 그려 그 중 가장 뛰어난 것을 임금께 바치고, 나머지는 벼슬아치들에게 하사하였다.

왕으로부터 세화를 받는 것은 왕과 함께 나라를 이끌며 새 시대를 여는데 중심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세화를 받지 못하는 전직 관료, 부유한 중인, 지역 유지들은 민간 화공이 그린 세화 모작을 사서 대문 등에 내걸었다. 민간 화공으로 세화시장을 넓히는데 공을 세운 화가는 신윤복이다.
세화 가운데는 대문에다 붙이는 경우가 많아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畵)라고도 한다.

대문에 내거는 이유로는 밖에서 병을 몰고 오는 역신이나 화재를 일으키는 신, 재앙을 불러오는 신 등 나쁜 귀신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도화서 화원들이 그리는 세화는 60장 정도였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하 한 사람이 가져가는 세화의 숫자가 많아짐에 따라 도화서에서는 원래 어제 인찰, 어필(御筆) 비문(碑文) 조성, 관찬(官撰) 도서 출간과 서책의 인찰과 도설(圖說), 비문의 전홍(塡紅)과 탁본 등의 직무를 수행하는 차비대령화원까지 동원해 세화를 그리게 했을 정도이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매년 900장의 세화를 그렸다고 한다. 도화서에 소속된 20명의 화원은 1인당 20장씩, 차출된 10명의 차비대령화원은 30장씩 도합 900장을 12월 20일까지 그렸으므로 '극한직업'이 아니었을까?

많은 세화로 인하여 종이와 먹이 품귀 현상으로 가격이 오르자, 이를 금지하려고 했으나 연산군의 뜻과 달리 1894년까지 이어졌다. 

궁중에서는 용 등을 주로 그렸으며, 여염집에서도 상류사회의 세화 풍습을 쫓아 벽에다 닭과 호랑이를 비롯해 해태와 개를 주로 그려 붙였다. 특히 삼재(三災)가 든 해에는  매 그림을 붙여 집안에 닥칠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 이들이 붙인 세화를 '민화'라고도 부른다.

제 티스토리를 찾는 분들은 2026년에는 아래의 세화로 모든 액운은 떨쳐내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사진:국립민속박물관)

새해에 액(厄)을 쫓고 복을 빌면서 대문이나 벽장에 붙였던 세화(歲畫)의 일종이다. 개는 전통적으로 호랑이, 해태, 닭과 마찬가지로 길상(吉祥)과 벽사(辟邪)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삼재부적판, 삼재를 막기 위한 부적을 찍는 판이다. 대개 삼재부(三災符)에는 호랑이와 매를 새긴다.
작호도(鵲虎圖) 19세기 호랑이와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를 소재로 그렸다. 각기 호랑이는 벽사(辟邪)와 보은(報恩), 소나무는 장수(長壽), 까치는 기쁨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호랑이와 까치를 강자와 약자에 비유하여 해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