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독립제1유격대대는 1950년 9월 14일 실시된 장사상륙작전에 참전한 학도병 위주로 구성된 유격대대로 대구역에서 모병활동을 통해 모집한 200여명을 비롯, 밀양지역에서 모집한 학생 560명 등 총 772명의 인원으로 편성되었다.
이들의 목표는 문산호를 타고 동해안 영덕지구 장사해안에 상륙하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후방을 교란, 적을 퇴치하는 것이었다. 특히 같은 해 9월 15일 전개되는 인천상륙작전의 기만을 위해서 북한의 주력을 분산시켜 성공할 수 있게 만든 작전이었다.
1950년 9월 13일 육군독립제1유격대대 부대원들은 2주간의 짧은 훈련기간을 거친 14~17세의 어린 학생들로 오후 2시 문산호를 타고 부산항을 출발했다. 그러나 문산호가 태풍으로 상륙하기도 전에 좌초되는 바람에 많은 인원들이 싸움 한번 못하고 희생되었다. 더구나 3일 간의 작전을 위해 보급 식량도 적은 판에 배가 난파되면서 이마저도 없었고, 이에 육군독립제1유격대대 요원들은 6일간이나 식량 보급도 없는 상황에서 전투를 치룬 것이다.
9월 14일 포항 북쪽 25km 지점인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장사해안에 상륙해 북괴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수많은 어린 학도병들의 희생 끝에 200고지를 사수하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였다.
9월 18일 퇴각 명령에 따라 장사해변에 집결한 학도병들은 39명의 요원을 남겨두고 9월 19일 LST 조치원호를 타고 퇴각하였다. 작전기간 중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인명손실을 겪었지만, 적 270명을 사살하고 학살 직전의 애국청년 10여 명을 구출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작전으로 인천 방면의 북한군을 분산시켰으며, 유엔군의 상륙지점을 북한군이 잘못 판단하도록 했고,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작전의 전개로 북한군을 기만하는 전과를 올렸다. 결과적으로 9월15일 전개된 인천상륙잔적 성공의 밑바탕이 된것이다. 북한 김일성이 저지른 오판으로 인한 희생이 너무 컸으며, 지금도 희생되신 호국영령의 유가족과 실향민들은 아픔을 이어가고 있다. 호국영령과 실향민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정치를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내용 참조, 사진: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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