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2월7일 오늘의 역사, 영화배우 최은희 납북

윤의사 2026. 2. 7. 09:52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던 최은희에게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북한 공작원과 조총련 관계자들이 합작 작품 및 지원을 제의하며 홍콩으로 초청했다. 재정이 어려운 안양예고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 생각한 최은희는 1978 1 14일 홍콩으로 갔으나, 처음에는 영화와 관련된 일정을 소화하다가 마카오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배에 최은희를 태우고 '우리는 지금 장군님 품으로 가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최은희가 울며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하자 마취제로 기절시켰으며 2월 7일 평양에 도착했다.

최은희 실종 소식에 신상옥 감독이 홍콩으로 갔으며 7 19일에 납북되었다. 최은희는 북한에서 환대를 받으며 생활했으나, 신상옥은 몇 번의 탈출 기도로 수용소에 갇히는 등 고생을 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는 다른 죄수와 대화가 금지되었는데, 신상옥이 대화로 정보를 얻으려다 적발되어 징계를 받았다. 신상옥은 질이 낮아진 식사를 보며 자신을 죽이려한다고 생각하고 단식을 하였다. 신상옥의 단식을 간수들이 비웃었는데, 6일째 되던 날 똥오줌을 싸고 기절했다는 소식에 김병하 정치보위부장이 달려와 저 사람이 죽으면 너희들도 죽는다며 화를 내자 대우가 좋아졌다고 한다. 이후 반성문을 쓴 다음 최은희와 만났다고 한다.

대외선전을 하기 위해서 제작하는 영화는 창의적이지 못한 북한의 영화제작자보다 신상옥과 최은희가 좋은 작품을 만들 것이라 생각한 김정일이 납치해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소금', '춘향전', '불가사리' 등 납북된 이후 약 8년 동안 영화 17편을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제작했다.

최은희·신상옥 부부는 도청과 감시 속에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언제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김정일의 입맛에 맞추면서 탈북의 기회를 노렸다. 1986 3 13일에 영화 촬영과 관련하여 중립국인 오스트리아의 빈을 방문하던 중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갔다.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미국으로 망명한 것은 한국으로 가면 김정일이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영화를 제작했다 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처벌할 것을 걱정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정부는 최은희·신상옥 부부에게 북한이 5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자 경호와 함께 LA에 집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미국 CIA에서는 중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육성 녹음을 제공하자 평생 연금을 지급하였다.

최은희·신상옥 부부는 2000년에 한국으로 완전히 귀국했으며 2006년에 신상옥 감독이 지병으로, 2018년 최은희가 세상을 떠났다.

김정일과 함께 한 최은희와 신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