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1월29일 오늘의 역사, 정인보의 〈동아일보〉 기고 논설 「오천년간의 조선의 얼」 압수당함

윤의사 2025. 11. 29. 15:06

"나를 춥고 굶주리게 할 수는 있어도 나의 얼을 빼앗아가지는 못한다"
한평생을 한민족의 정신과 정체성을 연구하고 지키고자 했던 위당 (爲堂) 정인보 선생 (1893~1950)이 한 말이다.

일제침략기에 일본은 만주사변 이후 한민족에게 식민사관을 주입시키며 내선일체를 내세워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에 맞서 정인보 선생은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지켜 정체성을 지켜야 일본의 침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깨달은 사람이다. 

총독부가 한반도를 영구 지배하고자 조선의 역사를 뿌리부터 왜곡하는 <조선반도사>를 편찬할 때, 이에 맞서 정인보 선생은 1935년 1월부터 ‘오천년 간 조선의 얼’이란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논설을 연재했다. 이는 조선사를 얼이라는 주제로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위당 정인보 선생의 집안이 일찌기 벼슬길에 나섰던 점과 함께 조선 양명학을 대표하는 강화학파의 영향으로 오랜 기간 유가경전과 제자백가를 비롯해 불교, 역사, 언어, 민속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공부하면서 '한국학'의 기초를 탄탄하게 만든 학자였다.

조선의 시조 단군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고 선언하면서 일제의 단군조선 부정론에 대항하고 신화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단군을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불러내는 고조선 역사를 연구하였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후 일제침략기까지 끈질기게 이어져온 ‘얼’을 찾아, 한민족의 역사는 곧 '얼'의 역사라 했으며 이를 '국학'이라 불렀다. 또한 국학의 기본은 실학(實學)에서 찾았다.
주체적인 자아이면서 보편적인 인간존재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얼'이라 주장했다. 또한 ‘얼’은 빈 것과 찬 것,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가치의 척도라고 봤다.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며 소극적이라 평가하지만, 정인보는 '칼보다 강한 붓'으로써 한평생 한민족의 정신을 지켜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국사, 국문학 등에 힘을 쏟았다.

일제는 <조선반도사> 편찬에 방해가 되고 한국인들이 올바른 한국사를 알게될까 두려워 1935년 11월 29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정인보 선생의 '오천년간 조선의 얼' 논설을 모두 압수했다.

광복 이후 미 군정의 통치를 받던 시절 미군정을 축출하고 임시정부를 세운다는 임시정부봉대 혁명위원회를 이끄는 위원장으로 활약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정부 수립 이후 민족의 얼이 깃든 노랫말로  4대 국경일의 가사를 지어 국학에 바탕한 역사인식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했다.
광복 이후 이승만 정부의 초대 감찰위원장으로 이승만 측근의 비리를 조사하다가 1년여 만에 사표를 내면서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어도 꿋꿋하게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선비의 모습을 보였다. 
6·25 전쟁 중에 납북되어 개성으로 가던 중 낙오되면서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하나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이 연재물은 1946년 서울신문에서 <조선사연구>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1983년 연세대 출판부에서 <담원 정인보 전집>(전 6권)의 일부로 출간되다.(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1946년 서울신문사에서 발행한 <조선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