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0월15일 오늘의 역사, 남산에 신궁 설치

윤의사 2025. 10. 15. 19:44

일제는 조선 식민 지배의 상징으로 1919년에 '조선신사(朝鮮神社)'라는 이름으로 신사를 설립하기로 하고, 1920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1925년 10월 15일 일제는 서울 남산에 43만㎡ㆍ15개 건물로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세웠는데, 신궁은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테라스 오오카미), 1912년에 죽은 명치왕 등 일본이 가장 큰 신으로 생각하는 신들이 있었다.
신궁은 신사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것이다.
일제는 남산에 있었던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이전하며 개인사당으로 낮춰버렸다.
일제는 10월 13일 경성역이 개장한 후 첫 열차운행을 조선신궁에 놓을 신체(身體)를 일본으로부터 받아오는 열차가 도착하는 행사를 가질 정도로 신경을 썼다.
남산신궁은 정식 참배로의 계단만 380여 단에 이를 정도이며, 신궁 안에는 본전, 중문, 사무소 등과 함께 경찰관출장소도 있었다. 그리고 남산 주변에는 공원과 일본인들의 집단 거류지로 만들어 버렸다.
10월 15일 10시 10분 신사(神社)에서 건물을 지어 신에게 고하는 의식인 '진좌제'가 이루어졌다. 다카마츠 시로 궁사(宮司) 이하 제원(祭員)들과 참례자 대표인 이왕가의 이강공을 비롯하여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부부, 각국 영사, 총독부 고위관료, 사단장 이하 군인, 은행가, 실업가 등이 대례복 또는 정장 차림으로 3,500여명이 모여 신전에 납폐와 공물을 올리며 진좌제를 열었다. 일제는 사실 다카마츠 시로 궁사의 권한을 총독보다 우월한 지위로 인정할 만큼 남산신궁의 격을 높여 한국인의 혼을 말살하려고 했다.
신도학자(神道学者)인 오가사와라 쇼조(小笠原省)는 <해외신사사>에서

10월 15일은 조선 신궁 진좌제의 날이다. 일본인도 조선인도 속속 돌계단을 오른다. 그러나 신전의 앞까지 일본인은 모자를 벗고 절을 하고 조선인은 휙 발길을 돌려 돌아갔다. 단 한 사람의 조선인도 참배하는 자가 없었다.

라고 적었다. 이때만 해도 친일파도 한국인의 혼을 지키려고 했던 것일까? 많은 한국인들은 일제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1945년 6월까지 신궁 2곳, 신사 77곳, 면 단위에 건립된 작은 규모의 신사 1,062곳 등 등 무려 1,141개를 만들어 한국인의 혼을 말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자존심과 혼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이를 거부하였다.
1945년 일제가 항복하면서 일본인들이 남산신사를 자진철거하였다.
남산신사가 있던 곳에는 1970년 박정희 전대통령의 지시와 국민 성금으로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백범광장이 들어서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백범광장에 있는백범 김구 동상(출처:서울시 중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