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위하여/목 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소리 없이 피었나니/
그날/항상 종이로 꾸겨진 나의 젊은 죽음은/
젊음으로 말미암은/마땅히 받을 벌이었기에/
원통함이 설령 하늘만 하기로/그대 위하여선/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아아 나의 청춘의 이 피꽃
청마 유치환의 '동백꽃'이란 시이다.
사정을 두지 않고 훅 들어온 사랑.
한 여인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열병은, 시인에게는 주옥같은 시를 남기게 했다.
청마 유치환과 여류시인 정운 이영도의 이야기는 통영에서 피어났다.
통영여중 국어와 가사교사로 있던 두 사람은 한눈에 반했지만 자유로운 사랑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당시 유치환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의 몸이었고, 이영도는 21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외동딸을
키우고 있는 미망인이었다.
9살 어린 과부를 좋아했던 시인 유치환은 그녀가 한눈에 들어오는 우체국 창가에 앉아 편지를 썼다.
유부남인 자신의 처지이기에 앞으로 관계를 더 나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절제된 느낌의 글이었다.
1967년 유치환 시인이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20여 년 동안 써 내려간 연서가 무려 5000여통 중
그간에 받은 연서의 일부 200통을 추려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책을 출간했다.
서간집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유치환은 1908년 7월 14일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한의였던 유준수의 8남매 중 차남으로 형이 극작가 유치진이다.
통영보통학교 4학년을 마치고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야마(豊山)중학교에 입학했다. 형 유치진은 같은 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학창시절 내성적인 성격으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집중했다고 한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 무고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무참히 학살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앗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도요야마중학 4학년 때 귀국해 동래고보를 다녔으며, 이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들어가지만
중퇴하였다. 연희전문을 중퇴한 유치환은 일본의 아나키스트 시인들과 정지용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시를 썼다.
1931년 <문예월간>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해 문단에 등장했다.
1934년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유치환은 본격적인 시작을 한다. <조선문단>에 ‘깃발’을 발표하면서 “이상향에 대한 향수와 좌절감에서 오는 비애감”을 표현하였다. 유치환은 ‘깃발’의 발표로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 불렸다.
1946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하면서도 시작을 멈추지 않았다. 6.25 전쟁 중에는 문총구국대로 종군하고,
1951년에는 이때의 체험을 담은 시집 『보병과 더불어』를 발간했다.
1967년 2월 13일, 부산남여상(현 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던 유치환은 학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좌천동 앞길에서 시내버스에 치여 부산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 세상을 떠났다. 저서에 <청마시초>, <유치환 시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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