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4월21일 오늘의 역사, 용암포 사건

윤의사 2025. 4. 21. 12:06

1903년 4월 21일 러시아가 대한제국에 압록강 하구에 있는 압록강 3대 항구 중 하나인  용암포(현재 평안북도 용천)를 조차(타국에 일시적으로 빌린 영토의 일부)를 요구하면서

포대를 설치하는 등 군사기지화를 위한 '용암포 사건'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일본이 일으킨 을미사변으로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으로 많은 이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즉 두만강 상류, 압록강 유역, 울릉도 등 3곳을 20년 동안 산림채벌권을 주는 '삼림조약'을 체결으며, 이를 구실로 압록강 인근을 점령하며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높이며 만주와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만한전진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때마침 중국에서는 외세배척운동인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 러시아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 15만명을 보내며 시베리아철도를 건설하였다. 이 철도가 만주횡단철도인 TMR(Trans-Manchurian Railway)이다.

사실 청일전쟁으로 한반도와 중국 요동반도를 차지했던 일본이지만, 러시아가 중심을 이룬 삼국간섭으로 약화되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저지른 사건이 바로 을미사변이다. 하지만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일본은 다시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 영국과 1902년 영일동맹을 체결하며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영국으로부터 승인받으며, 영국은 일본을 이용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고 하였다. 

러시아의 계속된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막기위해 일본은 대한제국 정부에 용암포를 점령한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조차지가 아닌 개항장 설치를 요구했다. 러시아는 용암포를 군사기지로 만들려는 시도로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이 격화되며 1904년 2월 전쟁이 일어났다.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의 요구대로 1904년 3월 23일 용암포를 개항했다.

결국 이 사건은 러일전쟁의 한 원인이 되었다.

사람이나 국가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혼돈의 시대이다.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사진: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